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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우언(禹言) 산책② - 오릉중자(於陵仲子)

NSP통신, NSP인사 기자, 2018-06-17 07:52 KR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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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호 빅히스토리랩(Big History Lab)대표

(서울=NSP통신) ◆오릉중자(於陵仲子)

중자(仲子)는 제나라에서 대대로 큰 벼슬을 한 집안사람이다.

그의 형 대(戴)는 蓋땅에서 받는 녹(祿)만 만종(萬鍾)이었다, 형의 녹을 의롭지 못한 녹이라 하여 먹지 않으며, 형의 집을 의롭지 못한 집이라 하여 살지 않고, 형을 피하며 어머니를 떠나서 오릉(於陵)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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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형의 집에) 돌아와 보니 그 형에게 살아있는 거위를 선물한 자가 있었는데 이맛살을 찡그리며 “이 꽥꽥대는 것을 어디에 쓴단 말인가?”라고 했다.

다른 날에 그의 어머니가 거위를 잡아서 그에게 먹게 하였다. 그 형이 밖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이것이 꽥꽥대던 고기이다”하니, 밖에 나가서 그것을 토해 버렸다.

仲子,齊之世家也。兄戴,蓋祿萬鍾*。以兄之祿爲不義之祿而不食也,以兄之室爲不義之室而不居也,辟兄離母,處於於陵. 他日歸,則有饋其兄生鵝者,己頻顣曰:『惡用是鶃鶃者爲哉?』他日,其母殺是鵝也,與之食之。其兄自外至,曰:『是鶃鶃之肉也。』 出而哇之。 <孟子(맹자) 滕文公(등문공) 下(하) 10>*일종(一鍾)은 벼 8가마 정도이므로 만종(萬鍾)은 벼 8만 가마에 해당하여 엄청나게 많은 양의 재산을 의미한다.

중자(仲子) 즉,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사람으로 본명이 진정(陳定), 字가 자종(子終)으로 전국시대 제나라의 유명한 사상가였다.

학식이 깊어 제나라 왕이 직하학궁에서 강학해 주기를 요청했던 사람이며 그의 제자들을 오릉학파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제나라 대부, 초나라 국상(國相)으로 초빙되었으나 거부하고 오릉(於陵)으로 들어가 살았다.

오릉(於陵)은 산동성(山東省) 추평현(鄒平)으로 지금의 치박시(淄博市) 부근이며 於陵(어릉)이라 적어놓고 오릉이라 부르는 이유는 중국인들이 오릉(於(wū)陵)이라고 읽기 때문이며 주자의 맹자집주에서도 於音烏라고 ‘오’로 읽도록 되어 있다.

진중자는 오릉에 거주할 적에 3일 동안 먹지 못하여 귀에는 들리는 것이 없으며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는데 우물가에 벌레가 반 넘게 파먹은 오얏 열매가 있어 기어가서 가져다가 먹을 정도로 청렴하다는 평을 당시 세간으로부터 받고 있었다.

이에 제나라의 장수였던 광장(匡章)이 맹자에게 진중자가 참으로 청렴한 선비라고 일컫자 맹자는 위 우언을 활용하며 진중자를 비판했다.

맹자의 눈에는 진중자는 청렴함에 대한 기준을 잘못 잡아 인간의 기본도리를 해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고 그런 잘못된 기준에 맞추려면 흙을 먹고 사는 지렁이가 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비판했다.

(以母則不食,以妻則食之;以兄之室則弗居,以於陵則居之。是尚爲能充其類也乎?若仲子者,蚓而後充其操者也.). 즉, 아무리 고귀한 목표라 해도 그것이 인간의 기준을 벗어나면 비록 그 뜻이 의롭다 한들 의(義)가 인(仁)을 해쳐 중용을 지키지 못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중국 북송 때 유명한 석학이었던 범 씨(范氏)(범조우 范祖禹 1041년 ~ 1098년) 역시 ‘하늘이 낳고 땅이 기르는 것에 오직 사람이 가장 크니, 사람이 위대한 까닭은 그 인륜(人倫)이 있기 때문이다. 중자(仲子)는 형을 피하고 어미를 떠나서, 친척(親戚)과 군신(君臣)과 상하(上下)가 없으니 이는 인륜이 없는 것이다. 어찌 인륜이 없이 청렴이라 할 수 있겠느냐?’(주자, 맹자집주 상) 라고 하여 진중자에 대한 맹자의 비판에 그 뜻을 같이 했다.

맹자가 이 우언을 얘기할 때와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렀고 시대상황에 따른 사회 배경이나 사람들의 의식구조에도 차이가 클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와 사회의 폐단을 바로 잡는다는 미명 하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에서 맹자가 이 우언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한 번 쯤은 새겨 봐야 할 것이다.

NSP통신-이만호 빅히스토리랩(Big History Lab)대표
이만호 빅히스토리랩(Big History Lab)대표

※이만호 빅히스토리랩(Big History Lab)대표는 대구 출생으로 연세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0여 년간 국민은행, SK텔레콤 등에서 직장 생활을 한 후 의료컨설팅 전문가로 활동했다. 현재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을 위한 지적 탐구에 매진하며 저술활동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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