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내용 건너뛰기(skip to main content) 본문 바로가기(Go body) 메뉴 바로가기(Go Menu)
G03-8236672469

최인락의 옴니암니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로 촉발된 ‘비문(非文)’ 논쟁

NSP통신, NSP인사 기자, 2015-07-06 16:08 KRD5
#비문 #박근혜 #대통령 #배신의정치 #모두발언
NSP통신-방송인 최인락.
방송인 최인락.

(부산=NSP통신) NSP인사 기자 = 최근 우리사회에서 때아니게 문장력(文章力)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말한 지난 달 25일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평소보다 유난히 많은 ‘비문(非文)’이 나왔다는 데서 촉발됐다.

이날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저도 결국 그렇게 당선의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이 남았습니다.”가 대표적인 비문(非文)으로 지적됐는데 이 문장은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비문(非文)’은 문법에 맞지 않은 문장들을 가리킨다.

G03-8236672469

비문의 유형을 크게 보면 문장성분의 호응이 맞지 않는 경우, 문장을 접속하면서 실수를 한 경우, 구조어의 호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관계가 잘못된 경우, 조사를 잘못 사용한 경우 그리고 기타의 경우 등이다.

◆ 구어(口語), 문어(文語)?

언어는 의사소통의 매개 수단에 따라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로 구분된다. 화자(話者)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하여 음성(사람의 말)이라는 음성적 기호를 매개 수단으로 사용한 경우는 구어(口語), 글을 쓴 사람이 시각적기호인 문자를 사용한 경우는 문어(文語)다.

이에 비추어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시각적기호인 문자’를 사용해 국민들에게 읽을거리로 제공한 것이 아니라 ‘음성적 기호인 말’을 매개 수단으로 사용하여 들려준 것이라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앞서 예로 든 문장이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우리말 구어(口語)의 특성에 비춘다면 큰 허물도 아닐 듯하다. 주어가 생략되거나 주술 호응이 분명하지 않은 문장은 분명 비문이지만 이것이 문자가 아닌 음성기호로 전달된 구어일 경우 그리 비난할 바가 못 된다.

말로 전달된 것을 굳이 문자로 옮겨 적어서 ‘비문(非文)’이니 ‘올바른 문장(文章)’이니 따지며 비난하고 조롱하는 행태가 되니 말이다.

◆ 문법에 대한 원칙과 규범에 얽매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번 모두발언의 ‘올바른 문장’ 여부를 따지는 글들이 대부분 언어영역이 아닌 정치적인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선진국일수록 정치인 등 지도자들이 올바른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언어능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휘력과 교양이 부족한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쓴다하여 늘 비난받았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미국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언어’에서도 언어학자 이상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에게 그것까지 요구한다면 지나치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기와 글쓰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서점에 나가보면 스피치와 글쓰기 방법을 담은 책들이 ‘너무’ 많다. 우리나라 수험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일이 자기소개서 쓰기라고 한다. 구직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법에 대한 원칙과 규범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글쓰기 행위 자체가 위축되고 말았다’는 지적도 있다. 자신의 생각을 적절한 어휘에 실어 맞춤법과 띄어쓰기 원칙에 맞게 써내려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숙제다. 곱고 바른 말을 문법에 맞게 구사한다는 규칙에 매달려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고, 써야 할 글을 못 쓴다면 본말이 뒤바뀌고 만다.

◆ 정치인의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

엄밀히 따져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또 언어능력은 문법적으로 정확하고 올바른 문장을 생성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번 비문 논쟁을 대하면서 정치가 살아 있는 생물인 것처럼 언어 또한 살아서 움직인다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어휘가 생겨나고 어제의 사투리(비표준어)가 오늘은 표준어가 되는 세상이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소통을 원한다면 형식을 탓해서는 안 된다. 주술의 호응이 조금 어긋나고 토씨가 빠지면 어떤가. 구성이 다소 복잡하고 장황하면 또 어떤가? 오히려 국민을 향해 더 많은 소재로, 더 자주 대화에 나서기를 촉구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어디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는가?

*필자는 부산외국어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한국어교육을 공부했으며, 방송인으로서 부산MBC ‘별이 빛나는 밤에’, TBN 한국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 등을 진행했다. 현재는 방송, SNS 등에 쓰이는 매체언어를 관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옴니암니’는 ‘다 같은 이(齒牙)인데 자질구레하게 어금니 앞니 따진다.’는 뜻으로, 아주 자질구레한 것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매체들의 사소한 표현을 소재로 우리말을 보살피는 길을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NSP통신/NSP TV people@nspna.com
저작권자ⓒ 한국의 경제뉴스통신사 NSP통신·NSP TV.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G03-8236672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