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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단상] 반을 지운다, 담담하지만 긴장감 있는 언어

(입력) 2017-08-07 17:42:48 (수정)
(태그) #이범근, #반을지운다,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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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NSP통신) 이복현 기자 = 파란에서 이범근 시인의 시집 ‘반을 지운다’를 출간했다. 반을 지운다라는 시집은 전체적으로 화려한 수식 보다는 담담한 어조로 돼 있다.

문장 자체가 비교적 단일하다는 점에서 평범한 시로 인식될 수 있지만 그의 시집은 독자로 하여금 천천히 읽고 생각하기를 원한다는 것 같다. 또 시인은 현실의 다양한 모습들을 정리하듯 이미지화하고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격절감(隔絕感)’이 때로 시를 읽는데 독자를 어렵게 하지만 대신 시는 팽팽한 긴장감을 획득하고 있다. 비교적 이번 시집에서 드물게 개인의 체험이 포함된 듯한 시 ‘도깨비’를 보더라도 이 체험이 과연 누구의 것인지 애매하게 그려져 있다.

모래 더미에 짓는 두꺼비 집은/방 하나뿐인 독채/자꾸만젖을 뱉어 내는 아이를 어르듯/흙에 덮인 주먹을 두드리면/등 뒤에 서성거리는 장마/점심을 잊는다//들어낼 가구도 서랍 속 패물도 없는 빈방/그릇 박살 나고 머리채를 끌고 나가는/고함도 없이/주목을 거둔다/부술비에도 무너지기 위해 지은 집/벽과 천정이 달려들어/적막을 쫓아내던 집

위 시는 삶의 체험이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있지만 시인은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시집 전체에 걸쳐 문장 속에 또는 행과 연 속에 강화돼 있다. 시집의 제목과 실제 내용과의 거리에서부터, 시 속의 행과 행은 일정한 거리에서 형성되고 그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시를 만들 때 고민한 흔적을 엿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시집에서 눈길이 머문 시 편들이 있다. ‘Mother Tongue’을 비롯해 ‘외박’, ‘설산의 원근법’, ‘가정통신 2016 205호 – 가을소풍’, ‘환절기’, ‘게이트’ 등이 그것으로, 이 시편들은 형식적이든 내적이든 잘 녹아든 시처럼 느껴졌다.

이중 이범근 시의 강점처럼 보이는 작품으로 들라면 ‘가정통신 2016 205호 – 가을소풍’을 들고 싶다. 아래는 이 시의 전문이다.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신선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입니다 칠판은 뭐든 적을 수 있는 계절입니다 학부모님 가정에 건강과 평안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중략//어제는 부리가 꺾인 채 교탁에 떨어져 있는 멧비둘기 몇 마리를 빗방울 흩날리는 칠판 속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몇 명이 따라 들어갔는지 세어 보지 않았습니다//중략//문장을 수평으로 지탱할 힘이 이 계절엔 없습니다 원을 그리면 금세 타원이 되고 사선으로 흘러내리는 분필 가루들//선생님들은 칠판 속으로 분필을 던져 버리고 교실 밖으로 나가며 대개 우수를 믿게 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중략//사물함에 심장을 두고 갑니다 이 계절엔 맥박이 없습니다

이 시는 제목에 틀렸다는 표시처럼 줄이 쳐 있다. 보내지 못했다는 뜻처럼 생각되기도 하고 보낼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도 같다. 그리고 누가 이런 가정통신문을 보낸다 말인가!

이 시는 이범근 시인의 다른 시들에 비해 다소 더 서술적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이 시를 자유롭게 하고 있다. 시를 이끌어가는 힘도 더 증가한 듯 독자를 시 속으로 끌어들인다. 전체 시 속에서 등장하는 소재들 역시 시의 감성적 느낌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시적 상상력은 감성 안에서 새로운 폭발력을 제공해준다.

‘가을’의 이미지와 이미 사라진 교실인 폐교의 이미지 속에서 소재로 등장한 사물들은 시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 이 안에 담담하게 쓰고 있는 화자의 ‘사물함에 심장을 두고’ 간 마음을 설득력 있게 전해주고 있다.

이범근 시인이 이번 첫 시집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시를 쓸지 기대가 모아진다.

 

NSP통신/NSP TV 이복현 기자, bhlee2016@nspna.com
저작권자ⓒ 한국의 경제뉴스통신사 NSP통신·NSP TV.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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