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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치인 정다은, 청년 값하기 위해 ‘청년과 아이들의 미래를 품다’

NSP통신, 권민수 기자, 2020-02-27 10:15 KR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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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 모든 할매·할배가 키운 소녀... 화내고 울어도 변하지 않는 세상, 개혁의 수단이 ‘출마’

NSP통신-정다은 더불어민주당 21대 경주시 국회의원 전략 공천 확정자. (정다은 국회의원 예비후보 사무실)
정다은 더불어민주당 21대 경주시 국회의원 전략 공천 확정자. (정다은 국회의원 예비후보 사무실)

(경북=NSP통신) 권민수 기자 = “난 두 아이의 엄마이다. 잘 먹고 잘사는 사는 사회보다.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를 바란다. 2016년 9월 12일 경주지진. 원전을 품은 경주의 어머니, 시민들은 지진과 방사선 누출이라는 중첩된 공포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러나 시에 요오드와 방호복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때 되면 주민 센터에 줄 서면 된다. 지금은 없다. 보관 장소, 관리할 사람이 없다’ 내가 믿었던 정부의 모습이다. 매뉴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 밖으로 어머니들과 나섰다. 내 아이와 경주, 어쩌면 대한의 아이들을 위해”

청년 정치인 정다은 더불어민주당 경주시 국회의원 전략 공천 확정자. 정치인이 아닌 인간 정다은의 삶을 듣기위해 코로나19로 멈춰버린 골목상권들이 모인 성건동 커피숍으로 가는 길에는 생명의 새싹을 돋우는 봄비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내렸다.

정다은 33세. 봄비로 햇빛이 가려진 잿빛 날에 카페 조명에 비친 처음 본 그녀. 시리도록 가냘픈 여인. 도대체 무엇 때문에. 세상의 큰 파도에 맞서는 정치인의 삶을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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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1986년 거제도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러나 양친의 가계 운영으로 인해 영천에 거주하고 있던 조부모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버려진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 이유를 마음에 묻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울지 않는 아이가 됐다”며 고개 숙인다.

영천시 화남면의 20여 가구가 모인 작은 시골 마을. 그녀는 이 마을의 딸로 키워진다. 모두가 할매, 할배 였다. 배고프면 어느 집에 가도 그녀를 친 손녀처럼 밥상을 차려 줬다고. 그녀의 유년기는 산천을 친구 삼고 마을 어른들의 사랑 속에 사계절이 주는 결실에 만족하고 가마솥 아궁이에 밤을 굽으며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욕심 없는 순백의 시골 소녀로 자랐다.

그 순백의 시골 소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가 있는 대구시 수성구의 중학교에 던져진다. 그녀는 “대 도시의 빌딩 숲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너무나 답답했다. 또래의 친구들과 삶 자체가 달랐다. 선생님은 수학 시간에 ‘24페이지까지는 학원에서 다 배웠을 태니까. 25페이지부터 진도 나가자’고 했다. 그때부터 난 또래들보다 24페이지만큼 준비되지 않는 학생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IMF가 오면서 어머니는 더 많이, 더 늦게 일할 때. 그녀는 이미 라면을 끓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고. “도시라는 틀에 정다은이를 꾸겨 넣는 기분이었다. 시골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정다운 친구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리고 난 또다시 혼자가 됐다. 그래도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며 회색빛 하늘에 시선이 멈춘다.

도시 속에 버려진 소녀. 그녀는 이미 세상을 알아버렸다. “운다고 세상은 나를 배려해 주지 않는다. 이 시절이 내 삶의 중심을 잡는 시기였다”며 살기 위해, 나답게 살기 위해 그녀는 탈출을 모색한다.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에도 그녀는 특성화고등학교인 관광고등학교를 꼭 집어 호텔리어를 꿈꾸며 진학한다. 여러 곳이 있었지만 공부와 학교생활에서 이미 24페이지 늦은 소녀의 선택이었다.

NSP통신-정다은 국회의원 후보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장애인분과 위원 위촉 모습. (정다은 국회의원 예비후보 사무실)
정다은 국회의원 후보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장애인분과 위원 위촉 모습. (정다은 국회의원 예비후보 사무실)

정다은 씨는 고등학생 시절에 인생을 바꿔버린 큰 사건을 경험한다. 미선, 호선 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망 사건이다. 대구 동성로에서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에 항의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한다.

그녀는 “어렸지만 화가 났다. 처음으로 ‘이게 뭐지’라는 정부에 대한 물음표가 생겼다. 계속된 집회 참여로 나는 알았다. 어떠한 대책도 없었지만 정부라는 것은 올바른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국가 간의 힘의 논리에 의한 선택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대중이 왜 뭉쳐야 하는지. 집회의 필요성을 알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비장하다.

그녀 나이 20세. 대학진학은 현실이 준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목표는 공립대 부산대학교 행정학과. “선택할 여지도 없었다. 현실은 입학 3개월 전부터 알바로 입학금을 모아야 했다”고 대학 생활의 경험을 풀어냈다.

그녀는 또다시 대학에서 한미 FTA, 광우병 사건 등의 집회에 참가하며 느꼈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를 봤다. 대통령이라도 마음대로 정책 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만 현실적인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국가라는 것”에 화가 났다.

학업과 알바. 이어진 대학 생활에서 정부와 권력에 대한 분노를 느끼며 그녀는 나보다 약한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알바로 모은 수입으로 고아원의 어린이들에게 피자를 사주며 공부를 가르쳤다.

이때부터 정치인 정다은의 정치적 가치관이 준비되기 시작한다. 적극적인 시민활동 참여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실천하며 한 번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24세의 그녀는 화려한 스펙도, 사회적인 연줄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비정규직 학습지 교사. 2년의 비정규직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그녀는 작지만 다수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적 행동을 실천한다.

그녀는 “비정규직 학습지 교사의 삶은 불안과 사회적 차별, 제도에서의 소외감을 느꼈다. 그리고 행동하는 다수가 목소리를 내야만 사회가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교사들이 모여 논의하고 의견을 회사에 제시할 때 변화가 있었다. 또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동료들과의 연대와 믿음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2011년 그녀 나이 26세. 그녀는 지금의 인생의 동반자이며 절친인 남편과 결혼해 대구 생활을 마감하고 경주로 이주한다.

정다은 씨는 “처음 경주로 왔을 때 나의 어린 시절 DNA가 폭발적인 감성의 아드레날린을 만들어냈다. 대구 빌딩 숲을 탈출한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탁 터인 경주. 그리고 나의 영원한 지지자이며 멘토인 남편. 나는 평범한 주부의 삶이 너무나 좋았다”고 미소 짓는다.

그러나 그녀의 습관처럼 몸에 밴 정치적 성향은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들을 위하는 어머니의 사랑에서 표출된다.

2016년 9월 12일. 경주지진이 발생하면서 경주의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2014년부터 이어진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그녀는 촛불집회에서 시민의 뜻으로 빛을 밝히고 경주시청으로 발길을 이어간다.

NSP통신-정다은 국회의원 후보 시민단체활동 및 정당활동 모습. (정다은 국회의원 예비후보 사무실)
정다은 국회의원 후보 시민단체활동 및 정당활동 모습. (정다은 국회의원 예비후보 사무실)

지진의 피해보다 더 컸든 원전의 방사선 유출에 대한 공포.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공포가 경주에 상륙한 시점이다. 그녀는 시에서 “원전의 방사선 누출에 대비하기 위해 요오드와 방호복 등을 어디에서 받아야 하는지” 질문했다. 시는 “때가 되면 주민 센터에서 줄 서면 준다. 지금은 없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 매뉴얼 모른다”는 대답이 더한 공포를 줬다고.

두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는 “잘 먹고 잘사는 사회보다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행동하는 어머니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시민단체에 참가해 적극적인 활동과 지역의 작은 문제부터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에 옮긴다.

그녀는 “나만의 노력은 아니지만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변해가는 지역사회의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확신했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제도 개선과 법률 제정이다. 이때부터 정당의 필요성과 정치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며 정치에 첫발을 들인 계기를 설명했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당원 가입. 촛불혁명이 가져다준 정권교체와 사회의 변화를 보며 그녀는 정치 활동과 당원으로서의 활동에 충실 한다. 정책과 법률을 결정하는 국회의 중요성과 국회의원이 갖추어야 될 지식을 준비하기 위해 국가조직과 법률 공부를 이어갔다.

평범한 어머니에서 정치인 정다은이 되어가면서 그녀는 보는 시야와 사고의 영역을 넓히고 지자체의 살림살이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그녀는 정치에 참여하며 “우리 아이들이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해 준 것이 고맙고 가장 큰 보람이다”고 전했다.

그녀는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국장, 중앙당 청년위 위원을 하며 평범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당내에서 꾸준히 냈다. 그녀는 “청년의 시각에서 청년의 값을 하기 위해 목소리를 냈다. 현실적으로 청년들이 필요한 것들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지난 24일 정다은 씨는 더불어민주당 경주시 국회의원 전략 공천 확정자로 공식 선정됐다. 정치 선배가 “청년 몫만 요구하지 말고 청년 값을 해라”는 한마디가 그녀를 결심하게 했다고.

그녀는 시민단체활동의 인수인계로 인해 늦어진 선거 참여에 “내 선거를 위해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경주시는 전략공천 지역이다. 18일 예비후보로 등록했고 중앙당에서 전략 공천 확정자로 나를 선정했다”고 전략 공천 확정자 선정과정을 설명했다.

정다은 더불어민주당 경주시 국회의원 전략 공천 확정자는 “화내고, 욕하고, 페이스북에 글 올려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직접 정치에 참여해 법률을 바꾸고 제정해야 한다. 이러한 것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이 출마이다”며 “2030세대가 대한민국에서 35%이다. 이 세대의 정치인은 3명, 1%이다. 청년의 생각을 담아내기 위해 청년당사자, 경험자가 국회에 참여해 활동해야 한다”고 출마의 이유를 밝혔다.

NSP통신 권민수 기자 kwun5104@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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