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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연재도용복 ‘살아있으라 사랑하라’(5)

참혹한 전쟁의 흔적, 아프가니스탄

NSP통신, 강혜진 인턴기자, 2012-05-31 17:35 KRD1
#도용복 #오지탐험가 #아프가니스탄 #살아있으라사랑하라 #간다라문화

수도 카불 하자르족마을 카불 강가의 타이타닉시장 ‘함맘’ 대중목욕탕

NSP통신-기업인이자 오지탐험가 도용복 회장.
기업인이자 오지탐험가 도용복 회장.

[부산=NSP통신] 강혜진 인턴기자 = [우즈베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경계 ‘아무다리야강’]

세계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적이 단 하루라도 있었을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의 르완다 등은 지금도 전쟁 중이다. 사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대치한 우리나라도 엄밀히 말하면 전쟁을 쉬고 있을 뿐이다. 전쟁터에서 무슨 문화를 논하겠는가마는 수많은 총탄과 포화로 폐허가 된 그들의 참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아프가니스탄. 지난 2007년 일산의 한 교회소속 선교사들이 집단으로 납치돼 몇몇은 목숨까지 잃은 우리에게 공포와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금역(禁域)의 땅이거늘 지난 2003년 봄에 이곳을 찾았다. 탈레반정권이 권좌에서 물러나 지금의 근거지인 북부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평화의 기운이 움트던 그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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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찾은 곳은 우즈베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경계선인 아무다리야강이다. 두 나라를 사이에 두고 철조망과 전기철선이 2킬로미터 정도 둘러쳐져 있다. 다리 아래는 시쳇말로 저승길이다. 강줄기를 가운데 두고 새까만 어둠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 검정인지 코발트인지 모를 강물 위에 나룻배 하나만 띄우면 영락없는 저승행차다.

육신은 이승인데 서사(敍事)는 저승이니 전도(前導)가 순탄치 않음이 분명하다. 그 때 멀리서 얼른거리는 점 하나 움직임이 기민하다. 후다닥 뭔가 다가온다. 온 몸에 전율이 인다. 눈을 돌리는 순간 소총의 총구가 코앞이다. 경계병이었다.

관광객이라고 설명하자 이내 표정이 누그러졌다. 헌데 자세히 살펴보니 동공에 초점이 없다. 군인이라기엔 너무 늙었다. 냄새 또한 적이 수상쩍다. 코를 벌름거리자 그제서야 가이드가 말문을 열었다. 아편에 취했단다. 극심한 가난과 배고픔, 아편에 찌든 탓에 갓 마흔의 나이에도 예순의 주름이 얼굴에 깊게 패였다.

다리 밑이 시커먼 것도 강 주변 갈대밭을 온통 태웠기 때문이란다. 아프가니스탄은 아편의 주재료인 양귀비 산출국이다. 양귀비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이를 노리고 밀매상들이 국경을 넘는 게 다반사다. 이들을 포착하기 쉽도록 어른 키만한 갈대들을 모두 새까맣게 태운 것이다.

NSP통신-당나귀는 아프칸의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당나귀는 아프칸의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사는 ‘하자르족’마을에서 지뢰를 밟다]

수도 카불에서 좀 떨어진 곳에 하자르족 마을이 있다. 하자르족은 칭기즈칸의 후예들이다. 탈레반은 수백 년 전 자신들의 선조를 몰살시킨 칭기즈칸에 대한 앙갚음으로 정권을 잡자 이 지역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주택의 대부분이 폭격을 받아 절반은 허물어지고 남은 절반도 벽이나 창문 없이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아예 씨를 말릴 작정으로 주택가 인근에 지뢰까지 매설해 놨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절망의 끝에서 하자르족은 다시 희망을 품었다. 높은 산언저리까지 당나귀로 돌을 실어 나르며 새 보금자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희망을 찍는데 몰두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고함이 들렸다. 연이어 소총의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여차하면 쏜다는 경고였다. 뭔가 잘못됐다. 발을 들려는 순간 다시 고함이 들렸다. ‘꼼짝 마.’ 군인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지뢰를 밟은 것이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능숙한 솜씨로 마침내 지뢰를 제거했다. 생사(生死)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하루에도 20여 명이 지뢰사고로 목숨을 잃는다고 했다.

NSP통신-아프가니스탄의 카불강을 끼고 있는 타이타닉 시장.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강을 끼고 있는 타이타닉 시장.

[정비공 청년과 카불공대 총장을 부산으로 초대하다]

카불 시내에서 단연 눈길을 끈 곳은 자동차 수리공장. 온통 총탄 자국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폐차 직전의 차량들을 이리 펴고 저리 두드리니 제법 그럴듯하게 고쳐졌다. 그런데 반나절 동안 사용한 공구는 드라이버와 망치뿐이었다. 20대의 정비공은 자신을 카불공대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전장(戰場)의 대학은 어떨까. ‘카불의 맥가이버(?)’라 할 만한 정비공 청년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이튿날 카불공대를 찾았다. 이른바 아프가니스탄 최고의 대학이다. 하지만 대학이라기엔 너무나 황폐했다. 무엇보다 컴퓨터 한 대 없다는 설명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현지에서 바로 강남주 당시 부경대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도적 차원에서 중고컴퓨터를 지원하기로 약속받았다.

여행을 마친 뒤 이들과는 후일담이 생겼다. 그해 6월 정비공 청년과 카불공대 총장을 부산으로 초대했다. 기증 컴퓨터도 가져갈 겸 들른 것이다. 헌데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먹지 못한다고 했다. 아예 ‘밥’을 처음 본다고 했다. 30년 전쟁통에 오직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빵만 먹은 것이다.

할 수 없이 이들은 햄버거로 허기를 달랬야 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위용이랄까. 햄버거는 먹어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시아의 주식(主食)보다는 미국산 햄버거와 더욱 친숙해져 있었다.

NSP통신-수도 카불에서 좀 떨어진 하자르족 마을.
수도 ‘카불’에서 좀 떨어진 하자르족 마을.

[간다라문화의 정점에 섰던 아프가니스탄, 아편과 포화, 폐허로 황무지화]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고대에는 간다라 문화가 태동했고 중세에는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카불 국립박물관은 아프간전쟁 전엔 30만개의 유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10만개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 탈레반 정권이 이슬람 원리주의에 따라 타 종교를 박해했기 때문이다.

2001년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훼손했다. 서기 2세기 쿠샨왕조부터 간다라 양식까지 20여만 점 훼손 유물 가운데 불상 등 불교유적이 70퍼센트에 이른다.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는 전쟁으로 점철됐다. 1978년 친 구소련파 세력이 쿠데타로 왕정을 끝내면서 아프간 전쟁이 촉발됐다. 사회주의이념 아래 무리하게 근대화정책을 추진하다가 이에 반발한 이슬람연합과 전쟁이 붙은 것이다. 이듬해엔 구소련이 개입했다. 전쟁은 구소련과 정부군, 이슬람과 반정부군이 각각 편을 나눠 9년 동안 이어졌다. 1989년 이슬람 연합이 구소련군을 물리치고 정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슬람 연합 내에서 다시 권력투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오늘날까지 내전이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파슈툰 족을 대표하는 탈레반이 헤게모니를 잡고 여타 종족의 연합체인 북부동맹과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2003년 파슈툰 탈레반이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전세가 뒤집혔다. 파슈툰의 추락에는 9․11테러의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준 데 대한 미국의 보복이 있었다.

카불강을 끼고 있는 타이타닉시장은 한때 루비, 에메랄드 등 보석시장으로 유명했다. 예전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장보러 나온 여성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차도르를 벗고 맨 얼굴을 드러낸 여성도 간혹 보였다. ‘타이타닉’이란 이름은 내전 때문에 단번에 성쇠(盛衰)가 뒤바뀌었다고 해서 침몰한 여객선인 ‘타이타닉호’에 빗대어 지어졌다.

반면에 ‘함맘’이라는 대중목욕탕은 탈레반 정권의 추락 덕택에 소생했다. “나체를 드러내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 맞지 않다”고 하여 폐쇄되었지만 다시 문을 열었다. 목욕탕이라 해도 다들 옷을 입고 목욕한다. 일부 부유층은 칸막이된 독탕에서 옷을 벗고 씻기도 한다. 때를 불리는 큰 탕은 없고 전부 한켠에서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씻는다.

목욕탕에 갈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마을의 공동우물에서 씻는데 한 컵 정도의 물로 세수를 마친다. 하지만 식수가 오염돼 위생은커녕 생명마저 위협받는 상황이다.

한때 간다라 문화의 정점에 섰던 아프가니스탄이 아편과 포화, 폐허의 황무지로 변한 건 오직 동족상잔의 전쟁 때문이다. 다행히 당장은 총성이 사라졌지만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도 언제 다시 있을지 모를 비극이다. 극도의 가난과 기아(飢餓)의 참상을 직접 보면서 느낀 전쟁에 대한 경계심. 그들의 절망에서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교훈이다.

내레이션 = 도남선 인턴기자 aegookja@nspna.com
촬영/편집 = 진종훈 기자 jin0412@nspna.com

NSP통신-아프가니스탄 국경 넘어서 초소 군인과 도용복 회장.
아프가니스탄 국경 넘어서 초소 군인과 도용복 회장.

강혜진 NSP통신 인턴기자, hjkang0710@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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