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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은 정치칼럼

동료 시민 손끝에 달린 정치적 올바름과 올바른 정치

NSP통신, NEWS, 2024-04-10 10:10 KR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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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P통신-나도은 정치철학박사(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나도은 정치철학박사(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서울=NSP통신) = 드디어 오늘(2024.4.10)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마무리된다.

매번 그래왔긴 하지만 이번만큼 상식과 이성이 철저히 무시되고 상상 초월의 무뢰함과 무도함으로 표를 갈취하려는 황당하고 무계한 선거는 아마도 건국 이래 처음 겪어보는 대사건이 될 것이다.

선거로 대별 되는 정치의 한 단면만을 보고 우리가 실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조 섞인 희망 사항도 여지없이 무너진 지난 몇 해의 선거가 이러한 징후를 예감케 했던 것을 우리가 굳이 외면해온 결과로 오늘의 이 사태는 우리가 벌인 지상최대의 정치적 희극에 대한 업보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래서 한켠에서 회자 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분분한 해석도 필요한 시점에 온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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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정치적 올바름’에서 말하는 소위 정치(政治)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분배’로 정의될 수 있다. 여기서 사회적 가치란 공익과 사익, 경제적 이익, 자유, 생존권 등 다양한 형태의 ‘이익’ 혹은 ‘권리’를 의미한다. 이 사회적 가치에 대한 제대로 된 분배를 학술적으로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론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은 인종과 성별, 종교, 성적지향, 장애, 직업 등과 관련해 소수 약자에 대한 편견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정치적·사회적 운동을 뜻한다.

문화상대주의와 다문화주의를 사상적 배경으로 삼아 인종, 성, 성적지향, 종교, 직업 등에 대한 차별이 느껴질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더불어 차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정치적·사회적 운동의 하나로 불리웠다.

이 PC(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은 20세기 들어 급속하게 진행된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된 인권에 대한 문제가 사회화되면서 평등한 사회로 나가기 위한 디딤돌로써 자유와 정의를 위한 투쟁이 사회운동으로 대중의 공감을 얻어내면서 시작되었고, 1980년대 미국의 대학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매스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PC 운동은 교조주의적 태도와 불관용의 문제로 인해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에 과도하게 집착해 대중들의 반감과 거부감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철학자인 움베르토 에코 역시 미국식 PC(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 불관용의 한 형태로 강자의 자기 옹호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바가 있다. 또한 격차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집중해 온 사회운동이 자신만이 세상에 기여한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교양의 한 측면으로 사회화되고 정치의 한 측면으로 진영화 되기도 했다. 또한 2010년대 영미권에서는 이 PC 운동이 인종·성·장애·종교·직업에서의 ‘올바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행동으로 풍자되기도 했었다.

이러한 PC 운동의 ‘교조주의적 태도와 불관용’ 측면이 2024년의 대한민국에서 특히나 선거로 대별되는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복판에서 소위 ‘내로남불과 팬덤정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포장되어 온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대한제국 말기 국권의 상실과 식민정치, 사상투쟁과 독립운동, 해방과 건국 그리고 민족상잔의 전쟁, 전후 복구와 근대화 그리고 그에 따른 독재, 군사쿠데타와 5.18 민주화운동 그리고 한강의 기적과 절차적 민주화(대통령 직선제 쟁취) 달성 이후 올림픽 개최와 IMF 그리고 사임과 피살, 퇴임 후 구속과 급기야 건국 이래 최초 탄핵이라는 기록을 갱신한 대통령의 불행한 말년 등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문 파란의 역사를 간직한 대한민국과 그 나라가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를 부여안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386세대가 국가권력의 한 축으로 성장하면서 ‘PC 운동’의 부정적 측면으로 결과된 ‘교조주의적 태도와 불관용’을 그들만의 특징적인 새로운 정치문화로 재생시키고 있는 이해 불가의 이상 형상을 당황스럽게 목도 하면서 느껴오는 생목으로 보여진다.

특히나 이러한 현상이 일상화된 계기는 2014년 4.16 세월호 참사에 이은 2년여의 촛불 시민혁명과 2016년 12월의 대통령 탄핵 그리고 대통령의 임기중단에 따른 2017년 5월 대선으로 급박하게 이어지며 시작된다.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후보의 대표 슬로건이었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는 재임 기간 내내 내로 남불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권력화된 386세대 즉 586 정치인들에 의해 소위 민주화 운동 세대라 불리우는 386세대의 역린을 건드린 근대화 세대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MZ세대의 가치 기준이었던 공정과 정의라는 역린을 정면으로 건드림으로써 촛불정권으로 불리운 문재인 정부를 5년 단임으로 정치적 생명을 마감시켰다.

특히 문재인 정권의 핵심축으로 성장한 586세대의 오만과 방자는 불평등한 기회, 불공정한 과정,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무능한 보수파트너와 짝 지운 어색한 동행과 함께 불안한 시대가 낳은 총체적 난장판을 연출하기에 이른다. 이는 윤석열이라고 하는 지극히 비정치적인 인물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세기말적 증상을 보이면서 진행된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간발의 표 차로 촛불정권의 단명에 별점을 찍어버리고 마는 전례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만큼 박근혜-문재인-윤석열로 이어지는 극적인 정권 교체과정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궤적을 그린 것이다.

따라서 제20대 대통령선거와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 과정에서 보여지는 세기말적 증상들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곱씹어 볼라치면 이를 대한민국 정치사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이 구축되어가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MZ세대가 추구하는 가치들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 기준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정당의 공천시스템(비명횡사와 친명 횡재, 친윤 공천 등)과 선택된 인물들의 행태(내로 남불, 부정부패, 막말, 갑질 등) 그리고 국민의 올바른 선택을 가로막는 각종 시스템(당내 민주주의와 경선기준)과 불합리한 제도(위성정당 등), 팬덤 문화와 정치(개딸과 양아들 등)로 인해 혐오와 증오의 정치로 전락하는 부정적 패러다임이 구축되어가는 과정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화두가 다시 전면에 던져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한편으론 올바름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교조 그리고 불관용과 이중잣대와 편향의 집착 등 ‘정치적 올바름’에 뒤따르는 각종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는 임계점에 관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왜곡된 PC 운동의 한국적 전형을 목도 하면서 ‘올바른 PC주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그에 따른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가를 찾아내 가야하는 것도 제22대 국회의원 총 선거를 치루는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이자 희망 찾기이지 않을까 한다.

평등의 관점에서 각종 편견으로부터의 해방과 각종 차별의 철폐과정을 통해 정치적 올바름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극복해나가고, 공정의 관점에 서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정치적 태도의 변화 즉 상대적 공정이라는 전향적 태도로 결과적 정의를 구현해내기 위한 ‘올바른 정치’를 동료 시민의 시각으로 새롭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고 그것은 정치인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세상이 정치인을 어떻게 보느냐로 기준하는 정치적 자세와 태도를 말함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보수정치인인 대처 수상이 한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생각을 조심해 말이 되니까, 말을 조심해 행동이 되니까, 행동을 조심해 습관이 되니까, 습관을 조심해 인격이 되니까, 인격을 조심해 운명이 되니까!”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의 나의 선택이 동료 시민의 시선에서 ‘정치적 올바름’의 한계를 극복한 ‘올바른 정치인’이었는 지에 대해 역사의 뒤안길에서 통탄할 후회막심이 아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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