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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자라는 포항 내연산 갑천계곡 ‘추억 찾기 산행’

NSP통신, 권민수 기자, 2020-11-16 13:00 KRD2
#경주시 #포항 내연산 갑천계곡 산행 #보경사 골짜기 #청아골 #연산폭포

산골짜기 새겨둔 추억, 말 없는 가르침... '추억이 삶이 되는 산길을 걷다'

NSP통신-포항 내연산 갑천계곡 등산로에 세워져 있는 나무 지팡이(좌), 갑천계곡에 어린 소나무가 자라난 모습(우). (권민수 기자)
포항 내연산 갑천계곡 등산로에 세워져 있는 나무 지팡이(좌), 갑천계곡에 어린 소나무가 자라난 모습(우). (권민수 기자)

(경북=NSP통신) 권민수 기자 = 가을이 떨어져 쌓인 산골짜기 오솔길에 퇴색된 낙엽처럼 30년이 지나버린 추억이 맴돌고 있다. 그 길 위에 선 산객을 가을의 화려한 붉은 화장을 지운 겨울 산이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반긴다.

산객은 30년의 추억이 떨어져 있는 포항 내연산 갑천계곡을 등산모임을 핑계로 찾았다.

내연산엔 호국과 삼국통일의 염원을 담은 천년고찰 보경사와 사찰을 휘돌아 감는 수룡의 계곡이 20여리를 굽이치며 12개의 자연폭포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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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룡의 꼬리에 올라선 산객은 함께 온 일행들을 뒤로했다. 경쟁하듯 오르는 산행에서 벗어나 사색하며 조용히 홀로 추억을 찾아보고 싶은 욕심에 목적지인 12개의 폭포 중 가장 장엄하고 수려한 연산폭포를 향해 보현암 방향의 산길에 올랐다.

‘사색, 홀로 산행’, 욕심이었다. 육두문자를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앞에 놓인 산길엔 외 홀로 나뭇가지에 대롱거리는 가을 단풍을 위로라도 하는지, 형형색색의 인간 단풍들이 진군하고 있었다. 이건 뭐, 뒤로한 일행들을 배신한 대가를 곱절로 치루는 샘.

산객의 욕심은 가을 단풍처럼 처량하게 날아가 버리고 떨구어진 눈엔 거북 등짝처럼 생긴 등산길이 보인다. 자연석을 여러 이유로 등산길에 박아 놓은 모양이다.

또 그 길로 이어지는 곳곳에 데크와 휀스가 눈에 들어온다. 많은 등산객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한 것임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것도 어쩔 수 없다. 자연스러운 옛길, 고저늑한 산행은 옛말이다. 이곳은 또 하나의 세상이다.

잃어버린 산행의 추억은 이미 세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도시주변 트레킹 코스를 걸으며 까마득한 기억 속에서 찾아야 만 했다.

그래도 이 길엔 그의 추억이 붉은빛 가을 단풍처럼 소복이 쌓여 있기에 변해 버린 환경을 애써 외면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오름길 어귀.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바위 아래 거무튀튀한 나무 작대기 하나 세워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본 나무 작대기는 반들거리는 손때가 윤을 내고 있다.

산행을 즐기는 산꾼들은 더러 보는 광경이다. 누군가의 산행을 도와 여정을 마치고 다음에 찾아올 도움이 필요한 산객들을 위해 다시 그 자리에 선 나무 지팡이.

이 나무 지팡이는 필요한 이가 산행의 동반으로 삶고 또 그 자리에 놓아둔다. 무언의 약속이자, 배려이다. 산행 첫걸음의 아쉬움을 따뜻한 산꾼들의 마음이 다리에 힘을 실어준다.

NSP통신-갑천계곡 쌍생폭포(좌), 촛대바위를 오르는 클라이머(중), 관음폭포(우) (권민수 기자)
갑천계곡 쌍생폭포(좌), 촛대바위를 오르는 클라이머(중), 관음폭포(우) (권민수 기자)

다양한 등산객들의 수다와 웃음이 익숙해 질 무렵 산객은 등산길 가장자리로 길을 비우고 발걸음을 멈춘다. 30년 전 추억의 첫 편린이 계곡 속에 늠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30년 전 청년은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틈에 자리 잡은 어린 소나무 한그루를 보며 생각했다. “너는 어찌 푹풍우 속에 몰아칠, 저 거대한 물줄기를 감당하려고 그 곳에 자리 잡았느냐.” 용기인지, 운명인지 모를 어린 소나무를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소나무가 살아남았다. 그것도 거목으로 자라나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계곡을 굽어보고 있었다.

가장 궁금했던 추억 속 소나무의 건재함을 보고 추억도 자랄 수 있음을, 불가능도 가능한 위대한 무한의 자연 앞에 존경을 표했다. 문득 어느 선사의 고언이 떠오른다. “진리는 사람의 생각밖에 존재한다.”

인간 사고의 한계밖에 우뚝 선 저 소나무야말로 진리에 가까운 모습이다. 자기 생각에 갇혀버린 인간들의 모습이 왠지 왜소해지는 순간이다.

“산을 많이 오르는 것은 독서를 많이 하는 것과 같다”라고 가르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이 증명된 현장. 열린 자면 누구나 볼 수 있음에도 그저 지나치는 한그루 소나무는 수백 톤의 계곡물과 폭풍우에도 견딜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진리를 품고 있는 저 소나무. 첫 번째 추억이 자라는 계곡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내 마음에도 소나무의 지혜가 자라길 바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눈이 멈추었다.

두 번째 추억은 하늘을 향해 촛대처럼 솟아오른 암벽에 개구리 마냥 납작 달라붙어 꼬물거리고 있는 클라이머들. 그때도 이러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행위가 저들은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즐기고 있다. 저들은 조금은 소나무의 지혜를 엿본 모양이다.

클라이밍이 취미인 후배가 “암벽에 사람이 설 자리가 없을 것 같지만 가까이 가보면 오를 수 있는 길이 보여요. 다만 훈련된 몸과 장비, 기술이 따라야 하지만요”라고 말한 가냘픈 여성 클라이머의 미소가 계곡을 비추는 햇살처럼 부서져 퍼진다.

영국의 존 밀턴은 자유론에서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데자뷔처럼 겹친다.

자신만의 삶 그리고 그 삶을 살기 위해 노력으로 만들어진 도구들이 필요하다고 두 사람은 말하고 있다.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길이 열려 있다는 후배의 조언과 존 밀턴의 자신의 삶을 살라는 말을 다시 세기며 올라야 할 돌계단 길에 시선이 닿았다. 인공물로 뒤덮인 산길에서 모처럼 만난 돌계단이라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으로 발을 올려놓았다.

그런데 돌계단은 돌계단인데 돌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시멘트로 만든 계단이 사이사이 보인다. “왜. 처음 봤을 때 이 계단길이 어색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머리를 스쳐 갈 때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러움이다. 시멘트 계단이 흐르는 세월에 탈색되어 돌과 너무나 닮아 구분이 잘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하다. 첫 등산길에서 느꼈든 어색한 인공구조물들도 등반객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져 자연과 한 몸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니 미안해진다. 이 또한 자신만의 느낌을 강요하는 감정의 독제며 오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많은 문명을 창조하고 사라져 가는 과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필요에 의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산객은 자신의 삶이 어떤 과정에서 어떤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지 뒤 돌아본다. 우측 계곡의 흐무러진 석축이 자연과 닮아 가며 그를 지켜보고 있다.

내연산 갑천계곡의 제1 폭포인 일명 쌍둥이 폭포인 상생폭포가 눈에 들어올 때 이미 산객은 윗옷을 벗고 이마에 땀을 훔치고 있었다. 폭포의 소(沼) 주변에 자갈마당이 넓게 형성돼 있다. 이곳에서 세 번째 추억을 만났다.

젊은 청춘 남녀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손수건을 돌리고 지목된 이는 노래하며 벌주를 마시는 모습이 폭포수가 만들어 놓은 물웅덩이에 맴돌고 있었다. 20대의 젊은 웃음소리가 계곡 속에 가득 채워지고 울림이 커져 30년을 시공을 뛰어넘어 산객을 웃게 한다. 반백인 산객의 웃음은 초겨울 바람을 닮아 조금은 쓸쓸하다.

NSP통신-경주시 솔담산악회 회원들이 갑천계곡 연산폭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권민수 기자)
경주시 솔담산악회 회원들이 갑천계곡 연산폭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권민수 기자)

이곳에서부터 계곡 속에 자리 잡은 폭포들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낸다. 보현폭포, 삼보폭포, 잠룡폭포, 무풍폭포, 관음폭포 그리고 목적지 연산폭포는 저마다의 사연을 이름에 새기고 산객들의 걸음을 쉬게 한다.

무풍폭포와 관음폭포, 연산폭포는 위아래로 나란히 세월을 함께하고 있어 그 터가 넓고 많은 등산객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중 관음폭포는 르네상스의 건물 입구를 닮은 둥근 돌문 3개가 우측으로 형성돼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네 번째 추억이 관음폭포 물웅덩이에서 물에 빠진 생쥐 마냥 걸어 나온다. 심술 굿은 동료들이 대동단결해 물에 던져 넣은 것이다. 그냥 있을까. 대부분의 일행을 물에 집어넣고야 직성이 풀린 그는 자갈마당에 드러눕는다.

줄지어 따라 눕는 동료들은 뜨거운 여름 태양 보다 더 밝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그저 웃고 있다. 문득 누군가의 시선이 얼굴에 햇살처럼 느껴질 때 두근거렸던 심장의 맥박 소리가 자갈을 밟는 그의 발걸음소리에 잦아든다. 그곳에 가만히 앉아 본다. 누구나 그리워하는 젊은 날의 추억. 자갈처럼 쌓인 추억을 소중하게 만져 본다. 그곳에는 젊은 날의 추억이 자갈처럼 쌓여 있었다.

30년 전 산행의 목적지. 현재 산행의 목적지. 연산폭포를 가기 위해 연산구름다리를 지날 때 반대편 등산객이 “이 다리를 지날 때 소리가 나지 않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라는 말에 내려놓던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그 순간 “삐거덕”, 헛웃음을 뒤로하고 도착한 연산폭포.

이곳은 많은 사람이 등산의 목적지로 삼는 곳이다. 가장 긴 물줄기를 자랑하는 연산폭포는 긴 호흡으로 흩어져 산을 오르는 일행들을 물웅덩이처럼 모은다. 그리고 모두 기념촬영을 하며 폭포의 주름처럼 새겨진 한문의 뜻 모를 이름과 문장을 각자의 사고로 분석하며 시원한 폭포수에 산행의 고단함을 씻어낸다.

오늘도 함께한 산행의 일행들이 폭포의 기다림 속에 한 명, 한 명 물웅덩이에 떨어져 있는 가을 낙엽처럼 소복이 모여든다. 추억이 모여든다. 다섯 번째 추억이다.

연산폭포의 물웅덩이에 떨어져 모여 있는 낙엽이 용 꼬리처럼 생긴 물꼬를 빠져나갈 때 이곳에는 하얀 겨울의 입맞춤으로 은색의 융단이 펼쳐질 것이다.

추억의 편린들이 모여 과거의 내가 되고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는 보았다. 이 산행에서. 추억도 자란다. 삶도 자란다. 언젠가 현재가 과거가 될 때 추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삶의 길에 일행들이 걸어가고 있다. 또다시 먼 훗날 다시 오기를 바래본다. 추억을 찾아.

NSP통신 권민수 기자 kwun5104@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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