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강수인 기자 = 새하얀 자작나무 숲에서 펼쳐지는 소름끼치도록 차갑고 시린, 그러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연극 ‘렛미인’이 9년만에 무대에 올랐다. 1200명의 지원자 중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발탁된 13명의 실력파 배우들이 ‘불멸’과 ‘필멸’의 공존을 연기한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연극 ‘렛미인’ 프레스콜이 열렸다. 연극 ‘렛미인’은 지난 2016년 국내에서 초연한 후 2020년 코로나19로 무대가 취소됐다가 약 9년만인 2025년 7월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번 2025년 시즌 오디션엔 12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이들 중 권슬아·백승연(일라이 역), 안승균·천우진(오스카 역), 조정근·지현준(하칸 역) 등 13명의 실력파 배우들이 발탁됐다.
12살의 몸으로 영원히 살아가는 뱀파이어 일라이 역으로 데뷔한 백승연 배우는 “일라이는 초현실적인 다른 세계에 있는 존재로 생각하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인간이 아닌 존재가 학습을 통해 감정을 갖게 되면 어떤 말투로 이야기할지 고민했고 동물이 사냥감을 노릴 때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일라이의 움직임을 보여드린 것이 오디션 때 긍정적으로 비춰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라이 역할을 맡은 권슬아 배우는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우리가 만든 환상이라 고귀하게 여겨질 수도 있고 하찮게 여겨질 수도 있는, 많은 것을 담는 존재”라며 “연민이 들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니 일라이랑 친해졌고 일라이가 마냥 이 세계와 멀어진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10대 소년 오스카 역할의 천우진 배우는 “다른 작품들에선 장기간 고강도 신체훈련으로 춤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번에는 섬세하고 절제된 움직임으로 서정적인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 제 도전과제였다”며 “움직임과 속삭임이 관객에게 어떤 떨림과 울림을 줄지 기대하며 무대에 오른다”고 말했다.
오스카 역할의 안승균 배우는 “오스카가 희망을 잃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극 속에 나오는 고독한 모든 인물들을 오스카가 치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며 “이번 오스카는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웠으면 좋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일라이 옆에서 평생을 헌신하지만 늙음으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하칸 역을 맡은 조정근 배우는 “하칸에게도 일라이, 오스카와 같은 모습이 40년 전에도 있었다”며 “불행하게 상대가 10대에 머물고 있다는 데서 오는 혼란과 자괴감 등을 하칸이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칸은 북유럽의 한겨울 절벽 끝에서 한 발만 내딛으면 날아갈 수도, 떨어질 수도 있는 그 경계에서 항상 고민하는 완벽한 슬픈 남자”라고 말했다.
하칸 역의 지현준 배우는 “외로운 사람들마다 불씨가 있는데 이 불씨가 우리를 따뜻하게 하냐, 태워버리냐의 문제”라며 “하칸은 일라이를 위해 기꺼이 타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년간 소설과 영화, 드라마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된 ‘렛미인’이 이번엔 황석희 작가의 번역으로 연극 ‘렛미인’으로 재탄생했다. 해외 원작의 본질을 잘 살리면서도 국내 정서에 맞는 유머러스한 대사가 더해져 관객들에게 강렬한 메시지와 재미를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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