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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작가. 극사실 펜화 ‘경주의 멋과 풍경’ 담아

NSP통신, 권민수 기자, 2019-09-26 12:00 KRD2
#경주시 #이상수 작가 #경주의 멋과 풍경 펜화 #이상수 작가 전시전

수십만 선 화폭 담아, 자신만의 작품세계 창조... 기존 펜화 벗어난, 회화적 작품세계 선보여

NSP통신-펜화를 그리는 이상수 작가. (권민수 기자)
펜화를 그리는 이상수 작가. (권민수 기자)

(경북=NSP통신) 권민수 기자 =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의 어린 나는 집안의 벽과 종이장판, 책, 심지어 어머니의 가계부까지 집안의 모든 면이 나의 캠퍼스였다. 나는 태어나서 손발이 움직이고 의식을 가질 때부터 이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상수 작가의 회고다. 그는 태어나면서 이미 작가가 될 운명을 가지고 경주시 황오동에서 1968년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경주시청 공무원이었다. 가정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별 어려움 없이 황오동에서 고등학교까지 어린 시절과 청소년시절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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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이하게 그림을 시작한 계기가 없다. 굳이 만들 자면 자신이 좋아서 이다. 계림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고우영 화백을 동경해 만화가가 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그림은 일상이었으며 생활이었다. 계림초등학교 시절부터 신라고등학교 다닐 때 까지 그림을 그리며 미술부 활동과 학교를 대표해 무수히 많은 대회에서 수상한다. 그가 미대 진학을 결심한 것은 신라중학교에 다닐 때이다. 결심한 그는 고교 때 신라문화재미술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그의 미대 진학은 순탄하지 많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미대생이 아니라 일반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화구를 숨기고 그래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는 아들의 화구를 부수었다. 물론 미술학원에도 보내지 않으며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배의 개인화실에서 독학을 하며 미대 진학을 준비했다. 그런 한결같은 마음과 미술에 대한 애정이 결국 자식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의 승낙으로 1987년 홍익대학교 조소과에 진학한다.

그가 조소과를 진학한 것은 대학진학을 위해 다니던 학원 강사의 추천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조소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NSP통신-이상수 작가 작품(왼쪽, 오봉산 주사암 소나무, 오른쪽, 경주 서출지) (권민수 기자)
이상수 작가 작품(왼쪽, 오봉산 주사암 소나무, 오른쪽, 경주 서출지) (권민수 기자)

이로 인해 그는 조각을 배우며 그림을 그렸다. 이상수 작가는 “조각과 그림의 구분은 무의미 하다. 그림은 평면에 자신의 생각을 구현하지만 조각은 입체적으로 장소와 환경에 조화롭게 구현할 뿐이다”고 설명했다.

이상수 작가의 대학시절은 모든 미대생의 생활과 다를 바 없이 미술학원에서 강사를 하며 학업을 완성한다. 군 생활을 그쳐 그는 1994년 대학을 졸업하고 경기도 안산에 작업실을 마련해 학생에서 프로 작가의 생활을 시작했다.

안산에 작업실을 마련한 이유는 안산에 있는 미술학원에서 강사 생활을 하면서 작가의 삶을 살기 위해서 이다. 성인이 된 그가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이상수 작가의 초기 작품들은 조각에서 시작됐다. 전공을 따라 평택 해군사령부의 조형물과 같은 대형 조형물을 제작하며 17년을 안산에서 보낸다.

그의 나이 43세. 그는 경주를 우연히 찾는다. 선배의 권유로 경주 러브캐슬의 감독과 기획·제작을 맡으며 경주생활을 시작한다. 이때에 그는 운명의 여인 권우진 씨를 만난다.

이상수 작가는 “지인의 소개로 까페에서 기다리는데 들어서는 한 여인의 모습이 너무나 맑고 깨끗한 웃음을 지었다. 만나는 내내 밝은 모습이 나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부산대학을 졸업하고 호주에서 통번역을 전공한 인재다. 현재 그녀는 대학 강의를 버리고 남편을 따라 경주에서 영어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은 늦은 나이에 2년의 장거리 교제 끝에 결혼해 경주시 금장에 보금자리를 잡았다.

이상수 작가는 조각을 하면서 펜화를 그리게 되는 계기는 우연히 만들어 진다. 그는 8년 전 고향 경주에 내려와 경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와 유적보다 늘 다니던 길에서 갑자기 눈에 들어온 낯선 풍경을 만난다.

그는 “알 수 없는 끌림이었다. 그것은 시가지 주변의 논밭 사이에 있는 작은 소나무 숲이었다. 가까이 가 보았다. 아마도 그곳은 지역의 주민들에게 한 여름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해 주는 소풍 장소일 듯했다”고 펜화를 결심한 순간을 전했다.

그는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불현 듯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 광경을 화폭에 담아야겠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경주의 풍경들이 하나 둘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놀러 다녔던 계림숲, 반월성, 황성공원, 오릉 등에서 시작해 점차 무관심하게 스쳐 지나갔던 곳이나 유명하지는 않지만 눈길을 잡아끄는 장소들을 찾아 다녔다.

NSP통신-이상수 작가와 부인 권우진 씨. (권민수 기자)
이상수 작가와 부인 권우진 씨. (권민수 기자)

이즈음 그의 창작 작업은 상상이나 이상화된 풍경의 창조가 아닌 풍경의 ‘발견’으로 전환한다. 작가적 상상력보다는 자연 형태의 재현을 바탕으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풍경을 주로 담는다는 점에서 영국의 낭만주의 풍경화가인 존 컨스터블과 닮았다.

존 컨스터블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의 시골 풍경을 주로 그렸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성서나 신화 속의 장엄하고 이상화된 풍경이 아니라 직접 자연을 관찰하고 세심하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상수 작가는 “그는 주로 자신이 살던 가까운 곳, 집 근처의 야외에서 작업을 했고 빛의 효과와 자연현상을 관찰했으며 보편적 아카데미의 전통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그와 동질성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추구하는 펜화는 15세기 이후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기록화로 많이 사용 됐다. 그는 펜이라는 재료로 그 특성을 살려 경주의 풍경을 그만의 조형 방식으로 나타내려 한다.

그는 “펜의 본질은 선에 있기 때문에 펜화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대상의 섬세한 표현에 가장 적절한 재료이고 선들의 중복을 통해 서서히 화폭에 아름다운 형상으로 구현된다”고 설명했다.

이상수 작가는 오는 10월 2일부터 9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그림손에서 지금까지 완성한 펜화 30여점으로 개인전을 연다.

이상수 작가는 “이번 전시는 내가 나고 자란 경주의 풍경을 소재로 했다. 주재료로 펜과 연필이다. 연필은 펜 보다는 표현 면에서도 시간적으로도 편리하지만 기초 재료인 만큼 그것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아크릴과 목탄, 파스텔 등의 특성을 살려 작가적 상상력보다는 자연 형태의 재현을 바탕으로 하면서 내 나름의 조형의식을 나타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은 펜으로 10일에서 15일 동안 수십만 선을 화폭에 담아 풍경과 사물의 내면까지 담아내는 극사실화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실물을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기존의 펜화가 주는 인쇄물처럼 딱딱한 느낌에서 벗어나 회화적 느낌을 추구해 수묵화와 산수화를 닮았다.

이상수 작가는 펜화를 한 단계 끌어올려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창조해 가고 있다. 그가 경주를 넘어 세계적인 작가의 길을 걷길 응원한다.

NSP통신 권민수 기자 kwun5104@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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