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NSP통신) 임성수 기자 = 주주 친화적으로 개정된 상법 시행을 앞두고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가 기업 지배구조 개편의 마지막 변곡점으로 떠올랐다. 시장에서는 이번 주총을 감사위원 분리선출, 합산 3%룰,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앞두고 기업의 경영권 방어 전략이 집중 분출되는 국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 정관 변경을 통한 우회적 대응과 이를 견제하려는 주주·의결권 자문사의 대응이 정면 충돌할 것이라는 시각도 팽배하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3일 ‘개정 상법으로 달라질 주주총회, 기업의 우회전략 vs 일반주주의 대응전략’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 개정 상법을 앞둔 주총 환경과 기업·주주 측 대응 전략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구현주 법무법인 한누리 파트너 변호사와 심혜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가 주제 발표자로 나서 기업의 방어 전략과 일반 주주, 의결권 자문사가 주목해야 할 쟁점을 제시했다. 또한 이사 보수한도를 둘러싼 최근 판례를 통해 향후 기업 평판 리스크가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는지도 짚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세미나에 앞선 인사말에서 “여당 원내대표가 이번 달 3차 상법 개정을 포함한 자본시장 법안들을 발의하겠다고 발표했다”며 “오는 3월 열릴 주주총회가 상법 개정 직전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사회 의장이 최소한 대표이사가 아닌 독립적인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돼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축해야 한다”며 “이번 주주총회는 매년 열리는 단순한 경영권 방어 시즌을 넘어 복잡한 셈법이 내재한 격렬한 전략의 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6년 3월 정기주총, ‘정관 방어’ 본격화…의결권 기준이 관건

법조계는 이번 주총이 개정 상법 시행 전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 봤다. 오는 7월 독립이사 제도와 합산 3% 룰이, 9월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시행을 앞두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이번 주총에서는 기업들이 경영권 유지를 위해 감사위원회 위원 수를 2인의 과반이 넘지 않도록 3인 초과로 확대하거나 분리선출 감사위원에 대한 시차임기제를 도입하는 등의 방어 전략을 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전략이 개정 상법의 입법 취지를 우회하는 정관 변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도 제기되는 상황. 이번 주총에서는 이사 선임뿐 아니라 보수한도 안건을 둘러싼 주주제안과 표 대결 역시 확대될 것으로 관망된다.
구현주 변호사는 “오는 3월 정기주총은 개정 상법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분수령”이라며 “이사회는 자신들의 방어 전략이 기업가치, 주주 충실의무, 거버넌스 평판 측면에서 정당한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정상법 이후 이사회 내 의결권의 중요성이 확대되는 만큼 의결권 자문사의 역할과 비중이 향후 시장 내 거버넌스 개편에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문사들은 정관 변경이 기업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이 큰 만큼 개정 환경에 부합하는 의결권 가이드라인 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집중투표제 등 실제 기업 운영과 맞물린 사안은 획일적 기준 마련이 어렵다는 점도 꼽았다.
오승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올해부터 정관 변경을 둘러싼 다양한 시도에 대응해 의결권 가이드라인을 구축하고 상법 개정의 취지가 실제 운용 과정에서 구현되도록 균형추 역할을 하겠다”면서도 “의결권 행사 여부는 자문사가 사전에 단정할 수 없는 사안인 만큼 찬반 입장만으로 기업에 신호를 보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 대표는 “기관과 개인 투자자 간 정보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각 안건의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한 분석 보고서를 제공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윤태준 한국ESG연구소 거버넌스 본부 팀장은 “이번 주총에서는 집중투표제 무력화, 이사 수 상한 축소, 감사위원 분리선출 왜곡 등 우려 사례가 다수 포착될 가능성이 크다”며 “공개 가이드라인에 반대 기준을 명문화하고 이사 수 상한 축소의 목적성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팀장은 또 “기업별 상황을 감안한 원칙 수립은 불가피한 만큼 시장 균형 도모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으나 이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사보수’, 판례는 주주 손들어…“의결권 행사 압박 본격화될 것”

오는 3월 정기주총에서는 이사 보수를 둘러싼 기업들의 방어 전략 역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관행처럼 유지돼 온 기업의 이사 보수 의결권 구조가 이번 주총 이후에도 반복될 경우 주주의 배당 성향 악화는 물론 기업 평판 리스크로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간 이사 보수한도는 주주총회에서 포괄적 한도 승인에 그쳐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과도하게 높은 한도가 설정돼 실질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은 데 따른 것이다.
심혜섭 변호사는 이사 보수가 경영진의 합법적 사익 취득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며 법 개편을 통한 구조적 개선을 역설했다.
심 변호사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소수 주주에게 결정권이 귀속되도록 하는 다수결 원칙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며 “보수와 주주환원 간 불균형에 대해 주주들의 문제제기가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주주 역시 인센티브·패널티 구조 변화를 인식해 보수 및 주주환원 정책을 재점검함으로써 잠재된 평판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관련 판례를 보면 이사 보수 의결권을 둘러싼 주주의 법적 기반 압박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남양유업과 한국앤컴퍼니의 이사 보수 관련 소송에서 재판부는 보수 결의 과정에서 경영진이 특수관계인으로서 이해관계를 갖는 점을 인정하며 해당 결의의 취소를 용인했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판결 이후 기업들이 관련 소송을 취하하는 등 실제 시장 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심혜섭 변호사는 “남양유업은 동일 쟁점으로 진행되던 사건을 취하하는 등 실무 변화가 확인됐다”며 “이후 한국앤컴퍼니 주주총회 결의 취소 소송에서도 특수관계인 지분을 제외할 경우 출석 이결권 과반 미달이 인정돼 결의 취소가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판례에도 불구하고 주주 충실의무 원칙 구현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어 보인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지배주주 집단 간 상호 지원, 주주 신분의 미등기 임원 보수 통제 미흡, 개인 법인을 통한 대주주 지위 유지 등으로 실질적 주주 충실의무가 훼손될 여지가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 변호사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주주의 소통 역량 강화와 의결권 행사 관련 법령 보완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보수 ·부부환원 불균형 기업의 주주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권리 개선을 이끌어내고 동시에 판례 기준의 한계를 보완할 추가적인 제도 정비를 마련하는 것을 하나의 장법으로 꼽았다.
◆시장 관계자 “남은 건 시장 몫”…2026년 정기주총, 낡은 관행의 전환 시험대

시장에서는 코리아 밸류업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오는 3월 정기주총을 계기로 법제화 이후의 관행 개선이 본격화돼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법적 틀이 마련된 만큼 이제는 시장 주체들이 능동적으로 거버넌스 관행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는 인식이다. 이에 더해 국내 기업을 평가할 금융지주 계열 자산운용사 자체의 거버넌스 개편 필요성도 제시됐다.
박유경 전 네덜란드연기금(APG) EM주식본부 대표는 “지난 2년이 법 개정의 시간이었다면 향후 3년은 올바른 시장 관행을 정착시키는 시간이 돼야 한다”며 “금융투자협회와 금융위원회가 개정 상법 취지 실현과 스튜어드십 코드 기반 거버넌스 개편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기관투자자 유치 전략의 전환 필요성도 언급했다. 해외 기관들이 국내 라지캡을 제외한 중소·중견기업 투자 시 ISS, 글래스 루이스 등 글로벌 투자 자문기관의 보수적 의견에 의존하면서 국내 액티브 펀드의 주주제안 반영 사례가 적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글로벌 투자 관행 역시 국내 시장 매력도를 제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더했다.
주총 운영 플랫폼 기업 역시 시장 설득을 위한 체계적인 커뮤니케이션 필요성에 공감했다. 주주 관여 구축과 상장 유지 비용 급증세 속 이사회와 경영진 간 역할 구분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주주총회는 단발성 이벤트를 넘어 소수 주주와의 연대를 형성하는 전략적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흘러 나온다.
임성철 비사이드 대표는 “이미 정부와 당국은 평가 시스템 개선,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영문 공시 확대 등 다양한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며 “이같은 환경에서 주주 행동주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제도 위에 형성된 거대한 흐름”이라고 짚었다.
임 대표는 상법 개정이 대기업 중심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은 기업 규모가 아닌 시장 전반에 자리 잡은 경영권 보호 중심 관행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자투표제와 주주 소통 강화 등 개정 상법의 제도들은 경영권 침해 수단이 아닌 주주와의 신뢰를 축적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며 시장의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이어 “기업들이 가장 간과하고 있는 점은 투자자들이 왜 해당 기업에 투자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라며 “주주의 투자 판단 구조를 이해한 기업에게 상법 개정은 부담이 아닌 장기적인 무형자산으로 자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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